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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써미튠즈 칼럼
(Date : 2013-06-07 18:03)
언더그라운드 뮤직 연재 - 2
Written by. floyd
 
 
 
언더그라운드 뮤직 연재 - 2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인디(Indie)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 레이블의 등장과 홍대를 중심으로 확대되어 나간 클럽 씬을 배경으로 성장해 나왔다. 당시의 독립 레이블과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클럽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 소개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민중가요와 대학가의 움직임,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으로 도입된 히피 문화와 함께 한국 대중 음악계의 가장 커다란 틀을 이룬 바 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그 실체의 이념이나, 근원적 발로의 누각에 있어서 1990년대 중. 후반에 자리했던 언더그라운드 권의 움직임은 과거보다 더욱 탄탄한 진보적 틀과 모양새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시대적 포만감 속에서 제작 시스템과 음악의 본질적 측면에서 '인디(Indie)'라는 신조어로 통칭되었다.

90's Underground = Indiependent Day
1990년대 후반 우리는 4대 방송 매체의 각종 프로그램를 통해서 생소한 어휘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 생소함의 실체는 '인디(Indie)'라는 것으로 처음 듣는 말치고는 당시 이미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 매우 근접해 있었던 어휘였다. 사전상 '인디'는 '인디펜던트(Independant)'의 줄임말로 '독립'이란 의미를 갖는다. 스타 산업의 상업주의와 한탕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던 과거 음반업계의 현실 속에서 돈을 위한 성공만을 추구하는 음악보다 자유로운 음악적 이상을 지닌 사람들이 '음악의 자유'와 '음악 창작의 독립'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 일련의 흐름을 '인디'로 총괄 지칭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인디'를 모색하는 구체적 움직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디'는 라이브 클럽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 1994년 신촌에 생긴 하드락 클럽 락 월드(Rock World)와 펑크 클럽 드럭(Drug)을 필두로 당시 전국에는 약 80여 개의 크고 작은 락 클럽이 있었다. 락 월드는 당시 정통 헤비메탈 계열 그룹과 뮤지션들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락 월드를 통해서 결성된 그룹이 바로 멍키헤드(Monkeyhead)였으며, 크래쉬(Crash)라는 대형 신인의 놀이터로서의 역할 역시 충분히 해 냈었다. 또한 이 곳에서 헤비메탈의 걸 & 보이들은 숱한 뒷얘기들을 쏟아냈었다. 락 월드의 등장은 위대했지만, 이 곳의 뒤안길은 다소 처연했다. 음악과 클럽이라는 부분에서 과거 1980년대 중반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 전파했던 락 월드는 일련의 사건을 뒤로 한 채 3년 여의 영예를 뒤로 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이후 1997년 홍대 주차장 어귀 지하에 다시금 락월드 간판을 내걸었지만, 락의 간판은 더 이상 락 월드로 이어질 수 없었다. 이후 꾸준하게 어이지던 한국 헤비메탈의 흐름과 진격은 새롭게 등장한 드럭군에 의해 처참하게 난자되었고, 여러 락음악 장르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정통 헤비메탈을 구사하는 그룹은 클럽 ‘롤링 스톤즈’와 ‘프리버드’ 등을 통해서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다. 당시 판형은 펑크와 정통 헤비메탈의 양극화였다. 음악의 흐름이 재미있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1996년부터 펑크와 모던으로 흩뿌려지던 인디 씬, 즉 홍대 클럽 필드의 움직임 역시 2년여가 지난 이후 코어 사운드로 무장된 신진 그룹들과 뒤섞이게 된다. 락 월드와 드럭의 등장은 과거 이태원에 위치했던 ‘우드스턱(Woodstock)’과 ‘헤비 메틀(Heavy Metal)’ 등의 원론적 우위를 차지하는 클럽들과 달리, 하나의 문화적 기운 형성에 있어서 보다 본격적인 형식을 띄고 있었다. 락 월드의 퇴장과 드럭의 꾸준한 성장, 그리고 재머스, 스팽글 등의 새로운 클럽의 등장은 장르 스펙트럼의 확장을 위한 당연한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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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이 '인디'의 진원지가 된 이유는 음악의 생산자와 수용자가 직접 만나 음악을 공유함으로써 신인들의 폭넓은 등용문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클럽은 점차 주류 음악이 배제시켜온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꽃을 피우고 형성, 또는 진보를 이루는 장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통 사운드와 새로운 조류의 분할된 흐름은 당시에는 꽤나 안타까운 진행으로 보여졌다. 이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디어에 의해 무분별하게 인디 문화가 조명되고, 대중들에게 전달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에 와서 당시 데뷔를 이룬 신진 그룹들이 건실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이제는 중견 밴드로서의 역할까지 이어오는 모습은 ‘락 음악의 분명한 본질’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많던, 그 많았던 락키드와 메탈키드들, 그리고 그나마 클럽과 공연장을 찾던 일반 대중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이제는 먼 옛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킹포차와 춤클럽에 먹혀 버린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여전히 해답을 찾는 중이다.

(본 포스팅에 언급되는 특정인, 특정 상황, 사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